청소년의 뒤를 따라 미래로 향하는 성장의 길을 걷습니다.

청소년의 꿈과 목표를 찾아서

  • 작성일 2014-03-31 18:31:47
  • 조회 562
  • 첨부파일
 청소년의 꿈과 목표를 찾아서
 
 권 갑 주

정보관리기술사(44회)
수석감리원(ITA법)
㈜한국정보감리평가원 대표컨설턴트
전 전남도 정보통신담당관, 전남 공무원교육원 평가교수실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싶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꿈꾸는 인생의 장기목표다. 일본의 청소년 연구소가 지난해 10월~12월까지 미국, 일본, 중국, 한국의 고교생 5,676명을 대상으로 한 ‘고교생의 의욕에 관한 조사’의 결과, 인터넷에 발표된 내용이다. 이와 달리 미국의 청소년은 “원만한 가정 꾸리기”, 일본의 청소년은 “친구 많이 사귀기”, 중국의 청소년은 “부자 되기”로 나타났다고 한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는 나의 적성을 살려 좋아하는 분야에 열정을 쏟는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오직 나만이 소중하고 쉬운 것이나 쾌락만을 연상하는 대체로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하게 비쳐지는 것 같다. 또한, “자신의 길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질문에는 중국이 34.2%, 미국 29.2%, 일본 22.9%, 한국 18.5%로 나타났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의 비율도 미국 36.7%, 일본 16.3%, 중국 10.0%, 한국 5.8%로 나타났으며,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고 보는가” 라는 질문에는 미국 55.4%, 중국 36.2%, 일본 34.3%, 한국 23.5%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모두 실망스럽다. 확대해서 해석해 보면 현 사회환경에서 그냥 내 인생을 즐기고 싶으니 마음에 안드는 것은 하기 싫고, 있는 만큼 즐기면 되며 부모가 능력이 있든 없든 아르바이트고 뭐고 힘드는 것은 다 싫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의 처지와는 아랑곳없이 우리사회의 3D(Dirty, Difficult, Dangerous)기피 현상의 한 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긴 아르바이트 해봐야 시급(시간당 2~3천원 수준)이 워낙 싸니 수백만원하는 납부금에 거의 도움도 되지 않는데 무엇하러 아르바이트를 할 것인가? 아무튼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들은 ‘자립심’과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다른 3개국에 비해 눈에 띄게 뒤떨어진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니 여간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미래는 청소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누가 우리의 청소년을 이런 안타까운 현실로 만들고 있는지 선진국의 문턱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사안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생각해 보면 우리 청소년의 가치관을 이렇게 만든 원인과 결과, 즉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6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시작한 후로 약 40년간에 걸쳐 짧은 시기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지식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정치적 민주사회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록 경제적인 부는 창출되었지만 돈이면 모든 것을 사고 가질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 등 여러 사회적 갈등과 폐단을 노출하게 되었다.
 
몇 개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 정치인의 지역과 민중의 전략적 선동에 의한 파벌조성 및 사회적 혼란
- 지역개발과 부동산 투기로 인해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졸부들의 탄생
- 농업시대에서 산업시대, 정보화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신흥 부의 창출과 이에 따른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 및 거리감
- 벤처기업의 성공과 급격한 몰락에 따른 성공과 실패의 현실체험
- 복부인의 아파트 당첨으로 인한 불로소득
- 과격한 데모로 해결하는 이익집단 사례
- 돈이면 만들어지는 인조 성형미인
- 1등 로또복권 등의 요행 심리 팽배
- 주식의 작전세력에 의한 한탕주의 만연
- 범죄인들의 특별사면 등에 의한 예외의 인정과 무전유죄 유전무죄 풍조
- 정부 공공기관 및 자치단체장의 민선에 따른 관련 정무(별정직 포함)직의 무분별한(?) 임명으로 인한 부족한 자의 고위공직자의 어설픈 진출 등등
 
 이러한 모습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경이며 우리 식구 및 이웃들이 그러하였고 아직 민감하고 여린 청소년의 눈에는 더욱이 부정적으로 확대되어 보이는 게 현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한탕주의가 팽배한 사회현실에서 누가 20년 30년동안 땀흘려 일하고 저축해서 내집 마련하려고 하겠는가? 땅투기나 아파트 당첨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평생 먹고 살 돈을 벌 수도 있는데 누가 정상궤도를 밟아 성장하려고 하겠는가? 죄를 지어도 금방 풀려나는 경우의 수가 하도 많으니 누가 처벌을 두려워하겠으며 법을 무서워하겠는가?
 
실력이 부족해 공직에 진출하지 못해도 정치인 잘 만나면 금방 고위직에 앉아 소위 자기보다 나은 이들을 호령(?)할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많은 데 뭐할려고 힘들게 공부를 해서 입신양명(入身揚名) 하려고 하겠는가?
 
젊은이들 마음속에 ‘나도 오늘저녁 황금돼지 꿈 꿔 낼 로또복권 사면 되는거다’, ‘이번에 한 건만 하면 나도 평생 먹고살 수 있겠지’, ‘어떻게 작전세력에 들어가 보지?’, ‘이번에 친구네는 신도시 개발로 인해 돈벼락 맞았다던 데’, ‘줄을 잘 서면 나도 곧 공공기관장 아니면 비서관자리 하나라도 앉겠지’. ‘내 배우지 못했어도 돈이나 연줄로 정계에 나가면 되지’. ‘재벌 됐으니 돈으로 권력과 폭력배 사면 세상 무서운 게 없지’ 이런 생각이 다반사일 게다.
 
우리사회에서 부의 축적이든 이익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한 건만 잘 하면 살 수도 있고 쉽게 얻을 수도 있었으니 작금의 일부 청소년들의 곱지 않은 잘못(?)된 꿈과 목표를 탓할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청소년은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는 이정표로 나타날 수 있다. 한마디로 선배들이 만든 비관적인 환경으로 인해 인생성장의 정상궤도에 이탈이 생긴것이다. 정상적 부와 권력을 얻기위한 올바른 노하우와 지혜, 가치관은 더 이상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며 이제는 더 이상 정상으로 가는 길은 어려워 선택하지 않으니 말이다. 신발끈 졸라매며 그 동안 선배들이 바쳐 이룬 경제적 성과도 부정적 현실에 가려 추락하고 있으니 성장의 가치관이 혼돈에 빠진 격이다. 일부 청소년들에게는 사회적 경험과 경륜을 가진 선배들의 조언도 부를 얻고 권력과 명예를 얻는 데는 귀찮은 존재요 눈에 가싯거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도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고 죄를 지어도 금방 사면되고 다소 부족한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분에 넘치는 공직에 임용될 수도 있으니 적당히 놀고 즐기다가 돈벌 길은 없는지 출세길은 없는지 천천히 노크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 라고 했다. 즉 아침에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것이다. 공자의 구도적 정열을 표현하는 말씀이다. 길을 찾고 도(道)를 구하는 사람을 우리는 구도자(求道者)라고 한다. 인간에게는 구도적 정신(精神)이 있어야 한다.
 
천하만물에는 다 길이 있다. 사람이 가는 길, 자동차가 가는 길, 기차가 가는 길, 비행기가 가는 길이 있다. 또한 서울로 가는 길, 문경새재로 가는 길, 목포로 가는 길이 있다. 형이하(形而下)의 길도 중요하지만 형이상(形而上)의 길은 더 중요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길, 어머니는 어머니의 길, 아들은 아들의 길, 딸은 딸의 길이 있다. 그리고 젊은이는 젊은이의 길, 청소년은 청소년의 길이 있다. 밝은 길이 있고 어두운 길이 있으며 진리의 길이 있고 타락의 길이 있다.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한 인간으로써 한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 청소년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한 국민으로서 인생의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민족에는 민족의 길이 있고 나라에는 장래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올바른 역사의 길을 가고 있는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내일의 청소년들에게 안내할 길은 무엇인가? 우리의 청소년들이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길을 잘못 가면 올바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성공의 길을 원하는 사람이 날마다 거짓과 낭비와 안일을 취한다면 그는 반드시 불행과 파멸의 길로 전락하고 만다. 나라가 선진국을 지향하면서 한탕주의가 용이한 정책이나 불법이 용납되고 예외가 인정되고 사치와 향락 등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올바른 이정표가 없는 사회에서는 그 나라는 결국에는 절망과 실패, 즉 다시 후진국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어떤 꿈과 목표를 갖고 어떤 가치관,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란 국가의 미래가 달린 것이다.
 
나는 어떤 길을 갈 것 인가. 나의 가정과 아들, 딸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의 국가는 어떤 정책의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우리의 청소년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개인이든 기업체이든 국가든 정도(正道)를 걸어갈 때 번영과 행복과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의 기업체는 옳은 길을 걷고 있는가? 우리의 국가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의 청소년은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이 물음 앞에 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배경에는 옳은 길을 가는 개인과 화목한 가정, 꿈과 희망이 가득한 청소년, 상도(商道)를 갖는 기업체, 올바른 민족의 길과 국가의 길이 있었다. 뚜렷한 국가관, 국민 개개인의 올바른 가치관, 경제적 기업관을 갖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 사업가, 근로자, 선배들이 있었기에 한강의 기적도 세계11위 경제대국도 가능한 것이었다.
 
최근 우리사회에 가진자, 있는자를 나쁘게 바라보는 일부 잘못된 시각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갖게된 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사람, 올바른 상도를 가진 성공한 기업인,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 정도(正道)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크게 우대하고 존경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본 받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스스로 올바르게 가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 부모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청소년, 경쟁시험으로 공무원과 기업체에 들어간 사람, 불철주야 노력하는 벤처기업가,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무원과 기업가, 결손가정을 잘 돌보는 사람, 숨은 선행자, 도로규칙을 준수하는 운전자, 공공시설의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세계각지의 산업현장에서 땀을 뻘뻘흘리는 매니아(mania)들과 천직을 감사하며 올바르게 일하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청소년다운 건전한 꿈과 바람직한 목표를 가진 뜻있는 청소년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앞날은 밝게 예측할 수 있으며 빛나는 것이다. 미국의 제 20대 대통령인 제임스 가필드(1831~1881)는 오하이오 주 촌락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온갖 궂은 일을 해왔고 고학으로 학업을 계속하여 결국은 대통령까지 한 인물이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앞으로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라는 질문에 다른 어린이들은 대통령, 사장, 법관, 교사, 운동선수, 연예인 등 그들의 꿈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필드만은 ‘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큰일을 해서 이름을 떨치기 보다는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개나 돼지보다 못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게 첫째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하여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한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의 길을 걸어 간다. 산다는 것은 모두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남이 나의 길을 걸어줄 수는 없다. 내가 나의 판단, 나의 선택, 나의 책임하에 나의 길을 나의 힘으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아들은 나의 딸은 그들의 길을 옳게 가고 있는가? 아들과 딸로서 청소년으로서 올바른 판단과 선택과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는가?

이 글을 쓰는 필자는 1남1녀의 자식을 두고 있다. 우리 애들의 꿈과 목표를 헤아리기가 참 어렵다. 앞의 설문을 돌렸을 때 우리 애들의 진솔한 답변여부를 알기가 무섭게 느껴진다. 분명 우리 애들도 다른 청소년처럼 꿈과 목표가 비슷하리라. 아니 오히려 이보다 더욱 실망감을 느낄지 모른다. 항상 세상은 기대만큼 보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은 자식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자식이란 내 몸을 빌어 한 인간으로 탄생할 뿐 나의 소유물이 아닌 존재라고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로써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 수는 있어도 자식의 생각과 가치관을 나에게 맞게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청소년은 그 시대와 환경에 맞는 자기의 꿈과 자기 인생의 목표를 가지게 되어 있으므로. 부모가 자기의 가치관이나 사상을 자식에게 안내하고 상담할 수는 있으나 결코 심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떡잎부터 알아본다”거나 “네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려서 한번 설정된 가치관은 나이가 들수록 고치기는 더욱 힘들 것이므로 새싹 같은 아들, 딸들에게 사회의 보다 밝은 면을 보여주는 부모들의 자상한 관심이 요구된다. 쑥쑥 자라나는 우리의 아들, 딸, 청소년들을 보면서 다급해짐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는가? 꿈과 목표를 향해 성실히 가고 있는가? 나의 아들과 딸은 아들의 길, 딸의 길을 가고 있는가? 바람직하고 올바른 꿈과 목표를 향해 성실히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