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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키’ 사태 일으킨 불신과 두려움

  • 작성일 2017-06-12 09: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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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키’ 사태 일으킨 불신과 두려움                  

최근 ‘안아키’가 화제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줄임말이란다. 얼핏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아동학대’란 단어와 이어지면서 논란이 됐다.

극단적 자연주의 치료로 알려진 안아키 카페 운영자는 한의사다. 수두백신을 맞히는 대신 수두파티(수두에 걸린 아이와 함께 놀게 함으로써 같이 수두에 걸리게 하는 것)를 통해 자연스레 면역력을 얻자 하고,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에게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주는 대신 소금물로 씻기고, 햇볕을 쪼이고, 해당 부분을 긁어내어 딱지를 지게 하면 저절로 낫는다는 식의 처방을 내렸다. 카페 회원이 6만명에 달하면서 안아키 방식대로 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이도 여럿 나왔고, 설상가상 의학계에서 ‘비과학적인 치료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이 카페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한 후 카페는 폐쇄됐지만, 한의학계는 한의학계대로 이번 사태가 전 한의학계로 불똥이 튈까봐, 양의학계는 양의학계대로 이번 사태로 인해 양의학에 대한 불신이 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왜 요즘 같은 첨단과학의 시대에 ‘안아키’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을까. 일반인의 의학계의 ‘과잉진료’에 대한 불신과 ‘약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하다. 이 불신과 두려움이 바로 ‘안아키’를 성장시킨 자양분이었을 터다.

물론 ‘안아키’의 세세한 각론은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백신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지난해 말 번역본이 나와 한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킨 ‘면역에 관하여’는 미국의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면역에 관해 공부하고 사유해낸 결과물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집단의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자신은 백신을 맞았지만 미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은 맞지 않았지만 접종자가 많은 동네에서 사는 사람보다 홍역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그 근거다.

백신의 효용은 인정하면서도 백신을 맞히면서 ‘찜찜한’ 느낌을 갖는 부모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 전국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부모의 4분의 1이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가설을 믿는다고 답변했다. 미켈 보쉬 야콥슨 워싱턴대 교수가 하버드의대 교수 등 세계적인 의학 전문가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거쳐 완성해낸 책 ‘의약에서 독약으로’를 보면 그 찜찜한 느낌이 실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유럽에선 약 20만명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약물의 과다 사용은 수돗물까지 오염시켜 프로작, 항생제, 항암치료제, 내분비계 교란물질 등이 수돗물에서 다량으로 검출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안일하게 약을 복용하고 있는가. 건강 공포심을 자극하는 예방의학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고 야콥슨 교수는 소리친다.

작금의 ‘안아키’ 사태를 현대의학의 성과를 무시하는 ‘무식한(?)’ 부모들의 잠시 잘못된 선택이라 치부하는 대신 왜 이렇게까지 불신의 늪이 깊어졌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답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최근 안면동통으로 관련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라는 의사를 만났는데 턱 근육의 문제 같다며 근육완화제를 처방해줬다. 약 처방전을 내미니 약사는 “이게 향정신성의약품이란 건 알고 있나” 물었다. 처방받은 약은 졸피뎀과 유사한 성분의 신경안정제이고 근육완화는 신경안정제의 부수적인 효능 중 하나일 뿐이며 수면제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부작용은 얕은 수면 상태에 들어 오히려 가수면 상태에서 고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약은 ‘간질 치료제’로 유명한 약품이었다.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의학의 권위를 부정하는 제정신이 아닌 부모’라며 몰아칠 수 있을까. 이번 사태가 의약업계 굳건한 정보의 비대칭성 구도를 깨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소연 부장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12호 (2017.06.14~06.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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